도쿄일상

한국 가기 3일 전 도쿄에서 쓰는 일기_7년만에 솔로 여행

수로그 365 2024. 11. 1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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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한국 가기 3일 전 도쿄에서 쓰는 일기이다. 혼자 한국을 방문하는 건 무려 7년만이다. 
그 동안 매년 한 번씩은 한국을 방문했지만, 지금의 남편과 여자친구 & 남자친구일 때도 같이 한국을 갔으니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혼자가는 한국행이라 나름 감회가 새롭고 또 색다르다. 

이 일기는 나의 런던생활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담고 있는 나름 장문의(!?) 일기이자 기록이기 때문에 다소 현실적인 글이다.

2016년 1월, 약 8년 전 모든 걸 버리고 혼자 런던으로 훌쩍 워킹홀리데이로 떠났다. 

그 때는 한국에 워홀이 끝난 후 바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아니였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런던에 더 오래 살게 되었고 거의 매년마다 같이 한국을 방문했다.

런던에서의 여러 직장생활, 유럽 & 북미 여행, 자택 매입, 자차로 여행 등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나름 이뤘다.

처음 한국을 떠나 런던에 갈 때의 24살의 '나'와 지금 런던에서의 생활을 접고 도쿄에서 혼자 한국을 방문하는 32살의 '나'는 꽤나 

다르다.

24살, 25살은 영국 워킹홀리데이

24살 이 때가 20대를 뒤돌아보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유럽친구들이랑 일하고 놀고 매일 영어를 듣고, 다른 사람 눈치볼 필요없이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고..정말 오래된 아파트에 트윈룸을 얻어 룸메이트와 함께 방을 쓰면서 보낸 1년이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좋았다. 

나이도 어렸고 잃을 게 없는 혈혈단신이였으니 내 세상이였던 것 같다. 데이트도 많이하고 밤 늦게 시끄러운 펍도 많이 가고 무한한 에너지로 일을 하고 밤늦게 마쳐도 그대로 또 더 늦게까지 놀았다. 피곤하지만 피곤하지 않은 생활들의 연속이였달까. 완전 내향형인 사람이지만, 사람이 좋아하는 게 있으면 이렇게 밖순이가 될 수 있구나하는 걸 느꼈던 시절이였다. 

25살

워홀로 알바를 1년 정도 하고나서 지금의 남편이 된 남자친구를 만나고 정규직을 구했다.

정규직을 구하는 기준의 우선순위는 워킹 비자가 지원이 가능한 곳이였다.

지원을 한 회사에서 운이 좋게도 내가 한국에서 이전에 가진 경력을 살릴 수 있는 곳으로 연결해주셔서 그 회사와 면접을 보게 되었다.

합격을 하고 수습 후 그 회사의 메인 포지션을 맡게 되었다.

 

정규직을 구하고나선 계속 회사집회사집의 반복이였다. 집 위치 역시도 센트럴 중심부가 아닌 외곽쪽으로 이사를 했다보니 평일에도 일을 마치고 집에오면 너무 피곤해서 어딜 가고자하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 같다.

정말 알바와 정규사무직은 차이가 크구나하는 걸 몸소 실감했다. 

또, 내가 버는 돈을 그냥 물쓰듯 펑펑 써버리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정말 힘들게 번 돈인데 쓰는 건 너무나도 쉬워서 돈 쓰는 게 좀 불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돈을 아끼려 노력했다. 아침은 잘 안 먹었던 것 같고, 점심은 회사에서 식비를 걷어서 그걸로 먹었고, 저녁은 집에서 라면을 자주 먹었던 것 같다.

집 주변에 정말 뭐가 없기도 했고, 쉐어하우스에 살다보니 저녁에 되면 키친이 붐볐다. 

27살엔 쉐어하우스랑 가족이 살고 있는 전원주택의 방 한 칸, 더블룸을 구해 6개월 정도씩 살았다.

 

평일은 직장생활, 주말은 남자친구랑 시간 보내기

이 시간들을 보내면서 마냥 긍정적이진 않은 나였다. 회사와 집의 위치에 대해서도 조금 회의적인 생각이였고, 내가 받는 월급에서 정말 많은 부분이 렌트비로 나가다보니 돈을 모아도 그렇게 많이 모이지 않았다. 하지만, 런던 센트럴에 나가면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또 사먹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것이 현실이였다. 토요일은 나름 남자친구와 시간을 보내며 힘을 냈지만, 일요일이 다가오면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또 우울해졌다. 

특히, 우리 부모님은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시면서도 금전적인 부분에 예민하시다. 한국에서 직장생활할 때 전세를 구해주셨고 저금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셨다. 그래서 워홀을 떠날 때도 나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셨었지만, 런던에서의 생활 구조에 대해 알게되실수록 계속 한국에 돌아와서 살아라며 아쉬운 소리를 많이 하셨다. 한국에서는 나가는 돈이 없어서 월급의 모든 부분이 세이빙 가능했다면, 런던은 그렇지 못해서 왜 계속 런던에 살려고 하냐,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냐, 혼자 가족이랑 떨어져서 사회부적응자처럼 런던으로 도피갔냐.. ㅎㅎ 

등등 꾸지람과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나도 개인적으로 힘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통화하고 할 때 비춰지다보니 더 속상해서 나무라셨던 것 같다.

26살

 

새로운 영국 워킹비자와의 삶과 함께 남자친구와 같이 원베드룸을 구해 살게 되었다.

1년동안 쉐어하우스와 남 가족집에 방 한 칸을 얻어 살다보니 너무나도 불편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대학생활 4년중 3년, 직장 1년 반을 계속 혼자 전세집에 살았다보니 거기에 익숙해져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워홀 초반 1년은 룸메이트가 있었음에도 이 때는 마냥 모든 게 좋았던 시기라 같이 사는 불편함을 뛰어넘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 동의가 아니라 통보식으로 얘기했던 나의 대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한국 - 런던 거리로 인해 영상 통화로 얘기할 수 밖에 없었기도 했지만, 부모님은 딸의 이런 결정에 큰 반감을 표하셨다.

한국 정서상 결혼 전에 남자친구와 함께 사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에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좀 우여곡절이 있었다.

여차저차 남자친구랑 원베드룸을 구해 살게 되었고 회사에서 더 멀어진만큼 열심히 출퇴근하며 남자친구와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27살 , 28살

 

직장생활은 계속 반복되었고,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함께 구한 원베드룸에서 1년 살고나서 다른 원베드룸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살던 집의 집주인의 동의하게 더 거주하게 되는데, 1년 거주 후 집주인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ㅎㅎ 

(우리가 이런저런 고장난 것들, 문제점 등을 얘기하고 하는 조율하는 그런 과정들이 있었는데 거기서 좀 힘들었던 것 같다.)

또 다르게 이사한 집은 정말 우리가 편하게 살았고 1년 정도 거주 후 집주인측으로 집을 매입해도 되냐는 문의도 했었다.

물론 돌아온 답변은 'NO'였지만 말이다. 이 집에 살면서 남자친구도 점점 고연봉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나역시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 금전적으로도 여유로워지고 좀 더 심적으로 편하고 여유로워진 생활을 했다.

29살

 

집을 샀다. 원베드룸의 월세를 2년 정도 계속 내면서 살다보니 높은 렌트비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 그 당시 우리가 은행에서 모기지로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이나 이자율 부분에서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보니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집을 물색했다. 5군데 정도 뷰잉을 했고, 뷰가 탁 트인 집으로 구매를 결정했다.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오갔던 과정이였다. 그동안 런던에서 자리잡으려 힘들게 살았던 우리에대한 보상인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월세를 내는 것과 모기지 대출을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 집을 사는 게 정말 110% 옳은 결정이였다. 

런던에서 그래도 '우리 이름 앞으로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은 아파트가 생겼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했다. 

 

영국에서 모기지로 집 사기

영국에서 집을 사게 될 줄이야 - 분명 워킹 홀리데이로 왔을 때는 2년만 있다가 가야지 했었다. 1년이 끝나가는 시기에 남자친구를 만가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지금 현 회사에서 비자를 전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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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

 

남자친구의 경우 1-2년씩마다 직장을 이동했고, 나의 경우 워킹 스폰서 비자이다보니 한 직장에 쭉 머물렀다. 

집은 바뀌었지만 직장생활은 계속되었고, 주말이면 런던 센트럴에 나가서 펍을 가거나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 집이 있다보니, 차도 있으면 주말에 근교로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남자친구 부모님을 보러 본머스에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친구의 경우 런던에 20대 초반에 왔고, 나의 경우 20대 중반 정도에 왔다. 꽤나 오래 살았다보니 이제 런던 센트럴에 나가는 건 조금 지겨워졌다. 차를 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설들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점에서 선뜻 사기로 결정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남자친구의 경우 재택, 나는 오피스로 출근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내가 더 차를 사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차로 출근하면 20분 거리지만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남자친구를 좀 설득했던 것도 있다.

아파트를 마련하고나서 몰랐던 점은, 서비스차지와 그라운드렌트비, 그리고 보험료이다. 내 집이 생기니 나가는 돈도 더 많기도 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나름 철두철미한 두 사람에게 더 이상의 지출에 조금 걱정도 되었던 것 같다.

 

2022년 11월, 영국에서 워킹비자로 5년 살고 난 후 영주권을 신청해서 얻었다.

영국에서 외국인 신분으로서 무한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비싼 건강보험료를 더 이상 낼 필요 없고 무료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직장에서 더 이상 스폰서를 받을 필요 없이 직장 선택의 자유가 있다. 

비싼 비자갱신료를 더 이상 지불할 필요가 없다.

영국에서 사회적으로 더욱 생활의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31살

 

2023년 1월, 미니 매장에 가서 14,000파운드를 주고 중고 미니를 샀다.

남자친구는 사기 전까지만해도 우리는 기름값 걱정을 할꺼다. 생각보다 많이 타지 않을 꺼다 등 현실적인 면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막상 매장에 와서 온라인으로 미리 봐뒀던 차를 실물로 보니 바로 마음에 들었는 지 조금의 의논 후에 바로 사기로 결정했다.

29살에 내 집을 소유하고, 31살에 내 차를 소유했다.

나름 사회적으로 이른 나이에 영국이라는 타국에서 나름 이룰만큼 이뤘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아 내 자신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물론 남자친구와 집도 차도 절반씩 부담한거라 공동 소유이지만 함께 하나씩 이룬 거에 너무 감사하고 뿌듯했다.

우린 함께 5년 정도 같이 살아서 사실혼의 관계라고 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둘이였다.

 

2023년 6월 14일, 우린 결혼을 했다.

영국에서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했다. 한국대사관에도 혼인관계 등록절차를 마쳤다. 부부가 되었다. 

부부가 되었다고 바뀐 건 없다. 집도 원래 있었다. 직장생활도 여느 때처럼 했다. 둘이서 그 전에 유럽 & 북미, 하와이 등 여행도 다녀왔다.

그냥 법적으로 등록을 한거라 사실 크게 와닿는 건 없었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크게 싸우지도 않고 사이 좋은 우리 둘이라 그냥 물 흘러가듯 지냈다. 남편, 와이프란 단어가 무지막지하게 어색한 우리이다.

 

2023년 8월, 이직을 했다.

영주권을 얻고나서 취업의 자유가 생긴 나는 영국에서 이직을 한 번쯤은 해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31살 마냥 어린 나이가 아니기에 한 번쯤은 이직을 해서 1년을 다녀보자라는 결심이 들었다.

때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구직 공고가 올라왔고 소위 대기업이라 불리는 곳에 이직을 할 수 있었다.

32살 

 

전혀 새로운 회사와 직무로 이직을 했기에 초반엔 우여곡절이 있었다. 집도 가깝고 회사도 좋고 회사 건물도 너무 이쁘고 연봉도 만족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이직을 해서 왔다. But,, 새로운 일은 누구나 그렇듯 멘붕이오고 어렵다. 그렇게 하나 둘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5년 이상 다닌 편안한 직장 환경을 집어 치우고 새로운 환경에서 둥지를 튼다는 게 챌린지인 거 맞다. 그래도 내 버킷리스트, 이직해서 1년 다녀보기를 이뤄서 마음이 좀 더 가볍고 편하다. 그래도 아직 사회생활에서 이루고 싶은 게 남아있긴하다.

 

2024년 8월, 일본으로 가기로 했다. 

1년 동안 아닌 직장에서 퇴사했다. 남편 역시 2년 정도 다닌 직장에서 매니저급으로 승진해서 일을 하다가 퇴사했다.

우리 집은 렌트를 돌리기로 했다. 차는 시아버지께 팔았다 ㅎㅎ 

남편은 도쿄의 한 대기업으로 취직이 되었다. 마냥 젊지는 않지만 지금아니면 할 수 없는 일본살이 기회를 잡기로 했다.

 

2024년 11월,

 

일본에서 사는 건 둘 다 처음인 외국인 두 사람. 처음와서 또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 만큼 사는 게 쉽지 않다. 일본 생활을 동경해왔던 남편에게 환상이 점점 깨지고 있다.

잠깐의 방문은 괜찮지만, 여느 일본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일본에서 일을 하며 산다는 건 또 다르다. 

그들이 겪는 일상생활에서의 여러 힘든 점, 애로사항들을 우리도 똑같이 겪게 된다. 이건 어느나라를 가든 만국공통인 것 같다.

다른 나라에 가서 쉽게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어느 나라에 가든 현지인들과 똑같은 밥을 먹고 생활을 하면서

이런 저런 고충을 겪게 된다. 마냥 편한 삶을 원한다면 다른 나라로 살러 간다는 건 큰 실수이다. 

우리는 런던에서의 정말 편한 생활을 접고 일본에 왔으니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남편은 런던에서 재택근무만했고 오히려 그 점으로 인해 삶에 회의감이 들었다지만, 지금은 오피스로 출근하며 런던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편했는 지 또 느낀다. 또한, 현실적으로 경제적으로 나름 넉넉한 생활을 하다가 일본에와서 다시 시작해 팀원으로서 자리를 잡아 마냥 넉넉하지 않은 경제환경을 겪고 있다보니 이 점에서 이상과 현실의 충돌을 느낀다. 

나의 경우는, 런던에서 또 다른 곳에 이직해 1년동안 다닌 회사를 퇴사하면 마냥 행복하고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10년 내도록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 갑자기 관둔 후 모든 걸 버리고 제 3국으로 오니 우울증 비슷한 것도 찾아왔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냥 행복회로를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전에 1년 회사생활이 너무 어려웠다고 할 수 없지만 나름 챌린지였으니까

그런데 일을 하고 싶다. 생활비라도 벌면서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이어나가고 싶다. 현실적으로 일본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사회적 제약이 있는 상태고, 그렇다고 일본어를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환경적 변화가 필요했던 것 같다. 너무 런던에서만 쭉 살다보니 우리에게 변화가 필요했던 듯 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힘든 점들이 있고 그 점들을 헤쳐나가려 남편도 나도 하루하루 보내고 있지만, 

남편이 이번 결정으로 일본에 오지 않았다면 나중에 한참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후회를 했을거고,

그 점을 서포트하지 않았던 나에게도 후회와 미안함이 자리 잡았을 것 같다. 

지금 좀 힘들더라도 나중에 돌아보면 이또한 추억이 되어 있지 않을까.

우린 도쿄에 1년 밖에 안살꺼고 1년이란 시간은 또 어찌보면 엄청 금방 지나가니 말이다. 

 

남편도 나도 가끔 homesick이 찾아온다. 런던으로 다시 짐싸서 가버릴까하는 생각이 든다.

도쿄에 온 지 두 달 반 밖에 안됐지만 생각도 많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걱정도 앞선다.

내심 빨리 9월이 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2024년 연말로 향해가고 있는 지금, 

내년엔 어떤 것들과 마주하게 될까.

 

도쿄살이 1년 중 1/4 정도를 마쳐가는 우리,

각자 나중에 뒤를 돌아봤을 때 유의미한 시간이면 좋겠다.

또 다른 희망을 가지고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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