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제일 처음 온 게 8월 28일이였으니 벌써 두 달반이 지나가고 있다. 막 왔을 때는 30도가 넘는 한 여름이였지만, 11월 중순인 지금은 온전한 가을 날씨이다. 한국이랑 정말 가깝다보니 온도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가끔 햇빛이 따뜻하게 비추는 날들도 있고, 흐릿흐릿한 날도 있다.
(매일 30분씩 아침마다 달리는 요요기공원. 이젠 익숙해져서 도쿄에서 집 다음으로 친근하게 느끼는 장소 중 한 곳이다.)
처음 타카다노바바쪽에 살 땐 사실 평일엔 거의 집콕생활의 반복, 주말엔 남편이랑 신주쿠 중심가에 놀러갔다.
집에서 거의 티비를 보거나, 밥을 만들어 먹고, 노트북을 하고 사실 흔히 생각하는 지루한 생활의 반복이였다. 아무래도 일본어도 전혀 안되고, 아는 사람도 한 명 없는 일본, 또 내가 실질적인 소득이 없다보니 막 나가서 쇼핑하고 밥사먹고 그런 놀기?가 마냥 마음편하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영국에서 일을 할 땐 평일엔 정말 집 회사 집 회사의 반복이였고, 주말엔 동네 펍이랑 식당에가서 맛있는 거 사먹고
공휴일이 연달아있는 주말에는 차를 끌고 본머스 시댁에 가거나 런던 근교 드라이빙을 갔다. 아니면 때로는 기분 전환을 위해 런던 시내에 가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혹은 맛있는 와인과 안주로 집에서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사람은 정말 신기하다. 일을 하면 쉬고 싶고, 또 쉬면 남들처럼 일을 하고 싶다.
일을 하면 너무 다람쥐 챗바퀴같은 삶이다보니 한 템포 쉬었다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고,, ㅋㅋ
그냥 쉬면 소득이 없어서 마냥 행복하지 않고, 약간 사회에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된 느낌이기도 하고,
원래 내성적인 성격인데 더 내성적인 성격으로 가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 ㅎㅎ 사회생활의 중요성 !
지금 30대 초반 여자로선 너무 늦지 않게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경력단절에 대한 조바심이 크게 있지는 않다.
지금의 데일리 루틴은, 8시 기상 - 9시까지 요요기공원 걷기&달리기 - 컴퓨터 하기(이런저런) - 6시 저녁만들기 - 저녁 티비보기
정말 별거 없다 ㅎㅎㅎ 이렇게 별거 없이 사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다.
일을 하면 쉬고 싶은데 또 쉬면 할 게 없는 1인?
한국에 있을 때 일본에 온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런던 살면서 한국 방문할 때 일본을 들린 적이 한 번있다.
오사카에 갔었는데 그 때 한 겨울이여서 그런지 어떤걸 내가 크게 느끼고 감흥이 있었는 지 사실 기억이 안난다.
도쿄에 사는 지금도 내가 도쿄에 어떤 부분이 정말 매력이 있다고 느끼는 지 크게 모른다.
막 부정적인 성향의 사람은 아닌데, 왜 긍정적인 마음가짐도 들지 않는지
그냥 외국인으로서 겉만 돌고 있는 기분이다.
초반 두 달은 신주쿠에 있었는데, 그 때는 주변에 정말 작은 공원 밖에 없고해서 밖에서 운동할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던 것 같다.
11월 이사한 시부야집에서는 요요기공원이 근처에 있어서 달리기 정말 좋다. 그래서 건강해지고 있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
일을 하지 않아서 얻은 건 '건강'이다. 체력이 계속 좋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에 와서 좋은 것만 보고 느끼고 체험하고 맛보고 구매하고하는 게 보인다.
일본이란 나라는 방문하기는 정말 최적화된 좋은 곳인건 틀림 없다. 왜냐면 물가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쇼핑에 특화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살기에는 별로인 나라인 것 같다. 임금 수준이 낮고 세금도 많이 떼가고 휴가 일수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
두 달반이 넘어가고 있는 지금, 사실 다시 런던집으로 돌아가면 정말 너무 ....행복할 것 같다. 내 집만큼 마음 편하고 아늑한 곳이 있을까?
다시 돌아간다고해도 오피스잡이 아니라 런던 한 카페나 빵집에서 일한다고해도 그냥 행복지수가 올라갈 것만 같다.
일본에서 비자문제로 인해 지금 당장 일을 할 수 없고, 일을 구한다고 해도 일본어 한계로 인해 내가 원하는 좋은 일을 구할 수 있을 지 ?
다수의 SNS를 보면 마냥 좋고 행복한 면만 담아내지만, 그 중 길거리 시민 인터뷰 영상들을 보면 찐 일본 현실이랑 평범한 사람들이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그들의 생활이 어떤지를 알 수 있고, 또 너무 헛구름만 잡는 소리가 아니라서 공감이 간다.
일기성 글이다보니 그냥 주저리주저리 써내려가고 있다.
내년 9월에 런던으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너무 편해지지 않으려 하는 마음가짐도 있는데, 그렇다고 뭐 편하지 않다 ㅋㅋ
10년동안 직장생활을 할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그냥 백수처지다보니 나에 대해서 느끼는 점들이 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나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무언가에 정말 열정적인 적이 있었나 싶다.
직장다니는 거 말고는 내가 정말 잘하는 걸 발견한 적이 없고, 그래서 무직, 전업주부같은 지금 시점에서 약간 공터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나는 끈기가 없다. 온라인에 보면 많은 프리랜서들이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걸 볼 수 있는데, 나는 하나에 미쳐본 적이 없기도 하고 그들을 따라 나도 무언가 열심히 해봐야지하는 마음가짐은 오래가지 않는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끈기와 도전의 덕목이 나에겐 좀 부족하다.
그래도 내가 20대에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24살에 1년 반의 직장생활을 관두고 캐리어 하나 끌고 영국으로 간 것이다.
난 학교다닐 때 영어를 정말 좋아하기도 했고 원어민 선생님들을 동경했다. 그들이랑 항상 같이 시간을 보내고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었다.
정말 내향적인 성향의 나였지만 나름 그들의 시야에 들기위해 초롱초롱했던 것 같다. 또래들보다 영어에 조금 집착적인 나를 느꼈다. 그래서 대학교 다니면서 마음 맞는 친구랑 언어교환 밋업도 주기적으로가고, 영어가르침봉사하시는 분이랑도 주기적으로 만나서 배우고, 외국인이랑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면서 그렇게 보냈었는데, 그게 재밌고 그래서 내가 영어권 국가로 가서 살고자하는 이유였다.
외국에 가면 무한껏 외국인들이랑 대화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그냥 내 세상일 것 같아서였다. 마냥 행복회로를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초반엔 자리를 잡느라 몇몇 시련과 고통이 있었지만, 지금와서는 그런 때도 있었지, 잘 헤쳐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때보다 잘한 결정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 직장을 퇴사할 때 사실 한국에서 아무나 막 하지 못하는 그런거라 주변에서는 정말 대단하다, 용기있다, 놀랍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런 의아함과 궁금증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외국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훌쩍 지구 정반대로 떠나버린 거니까.
얘도 독종이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ㅎㅎ 본인이 지향하는 삶을 향해 독립적으로 행동한거니까.
그 때는 아무래도 떠나는 시점 기준 25살이라 워킹홀리데이 2년 끝나고 한국 돌아오면 27살. 부모님도 살짝 무거운 마음을 내비치셨지만,
워낙에 독립적인 성향의 우리가족이라 큰 반대는 없었다. 그 때 영국행 티켓 하나 들고 간 내 자신이 지금은 런던에 집까지 소유했으니 나름 실패한 외국행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 도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 달반째 살아가고 있는 시점,
나자신을 생각한다면 다시 런던에 돌아가고도 남았다.
다시 돌아갔다면 일을 구하고 동네 펍이랑 단골집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최애장소 트라팔가 광장에 가서 나의 여태껏 삶을 뒤돌아볼 것 같다.
남편을 위해 내년 9월까지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고
부정적이기보단 최대한 긍정적인 마음 가짐을 가지려 한다.
모닝런으로 나름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니 좋다.
이번주 토요일엔 한국가서 가족들이랑 10일 정도 시간을 보내고 올 예정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간 한국은 지난 5월.
그 땐 부모님이랑 남편과 함께 다같이 괌여행을 다녀와서 정말 좋았는데,
이번엔 한국가서 친구보고 가족과 시간을 잘 보내고 올 것 같다.
아무튼 마냥 수박 겉핧기같은 잃어버린 1년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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